우리, 프로그래머들 / 로버트 마틴/ 길벗

 

 

요즘 대AI 시대라는 말에 가슴이 답답한 개발자가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개발자라는 역할이 계속될 수 있을지, 지금 익히고 있는 기술이 미래에도 의미가 있을지 불안하다. 이런 격동의 시기에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하는 책이 나왔다. 클린 코드로 유명한 엉클밥 아저씨(엉클이 아저씨라는 뜻이니 역전 같은 느낌을 주는 표현이구나)의 신간 <우리, 프로그래머들(We, Programmers)>에서는 미래에 대한 정답 대신, 거꾸로 과거를 깊이 파고들면서 그 답을 찾는다.

 

첫 페이지를 펼쳤던 때가 1월 28일이니, 대략 10일동안 출퇴근길에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IT,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1부에서는 우리 같은 개발자들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거장들의 일화를 통해  소프트웨어가 발전해 오면서 개발자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소개한다. 3장에서는 마틴 자신이 개발자로서 걸어온 길을 정리하고, 4장에서는 그동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견해를 적고 있다. 3장과 4장은 자서전 내지는 회고록 느낌이 든다.

 

예전에 영문학을 전공한 친구에게  '너는 세익스피어를 직접 만날 수 없지만, 그래도 IT 쪽은 웬만한 분들이 아직 생존해 계셔서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라고 농담한 적이 있었는데, 이 분야의 개척자들이 돌아가시는 상황에서 개척자들의 시도와 견해를 이처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사파리 북스에 올라왔을 때 한 번 가볍게 읽었는데, 번역본은 꼼꼼하게 읽었다. 이 책을 보기 전에 읽었던 인사이트에서 출간된 <오래된 인터뷰> 1,2권, <소프트웨어, 개발방법론을 만나다>, 한빛미디어에서 출간되었던 <유닉스의 탄생>, <사라진 개발자들>의 내용과 겹쳐지면서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

 

어쩌다 보니, 소프트웨어 개발의 역사를 계속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때 컴퓨터학원에 다니면서 배웠던 애니악과 유니박 이야기, 인간 컴퓨터 이야기 등이 새롭게 다가왔다. 예전에는 그냥 암기식으로 컴퓨터의 역사는 이렇다 하면서 외웠던 내용들이다. 엉클밥 아버지도 중학교 과학 선생님이셨고, 우리 아버지도 선생님이셨다. 아버지는 그 시절 그렇게 고가의 컴퓨터를 왜 구입해서 나에게 배우게 하셨던 걸까?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이유를 여쭤봤어야 했다. (이 이야기를 하면 연식이 드러날 것 같은데, 여하튼 컴퓨터학원에 가면 종이에 인쇄된 키보드를 나눠주던 시절이었다. 입으로 소리 내면서 종이 위의 키보드를 짚어가면서 자판 배열을 익혔다.)

 

라때는 더했... 쿨럭..

 

내가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대AI 시대'에 개발자의 미래나 역할에 대해 여러 주장들이 많고, 다들 나름의 논거를 가지고 주장하는데 비등비등하니 불안감이 커지고, '개발자로서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커져간다. 이런 시기에 옛날이야기를 읽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덮으면서 역사란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를 재인식함으로써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열어주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이런 류의 책을 펴내는 것도 그런 고민에서 출발했을 것이리라.

 

거장들의 일대기를 보면서 '개발자들은 언제나 특유의 호기심때문에 예전에 없었던 영역을 개척해 가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그 과정을 정리해 왔음'을 한번 더 깨닫게 된다. 또한 개발자의 소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데, AI 시대에도 결국 소프트웨어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높여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엉클밥은 리스프를 선호하는 것 같은데, 여전히 기계와 가까운 C언어 계열이 나에게는 더 끌린다.(수학을 못해서 그런가;) 그런데 한편으로 LLM이 등장하면서 자연어, 특히 영어가 개발언어로의 입지를 강화하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함께 떠올랐다.. 프로그래밍 방법론이나 기술은 인간 개발자의 실수를 막는 쪽으로 발전되어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구조적 프로그래밍에서 객체지향을 거쳐 함수형에 이르기까지 우리 개발자들이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밖에 없었던 영역을 보완해 주는 접근방식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엉클밥이 말한 것처럼 '앞으로 50년은 기존에 있던 기법을 확장하고 다듬어나가는 시기'가 될 것이라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AI의 영향력에 대해 책에 실린 엉클밥의 의견(23년도 버전)은 이미 철지나간 것일 수도 있다. 생각보다 부정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 사이 Coding AI가 많이 발전했으니  배휘동 님의 서평을 통해 엉클밥의 최근 견해를 업데이트하는 것이 좋겠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문구는 다음과 같다.

"그 누구도 톰프슨과 리치에게 유닉스와 C를 만들라고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열정과 호기심, 함께 성장한 개발자 커뮤니티입니다..... 결국 그들은 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들만큼 똑똑하진 않지만 그래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개발자들과 열심히 소통하면서 계속 탐구해 가는 자세를 견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엉클밥도 열심히 유즈넷에 글을 쓰면서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던가!

 

엉클밥이 SICP와 클로저를 배운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가 2009년이다. 나보다 늦게 봤구만. 인사이트에서 SICP1판이 나온 게 2007년인데... 잠깐.. 그런데 그때 엉클밥 나이가.... 52년 생이니 57세일 때다.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게 된다. 내가 새로운 언어와 프로그래밍 개념을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했던 게 언제였던가.

 

엉클밥이 Rational에 이직할 뻔 했던 이야기에서도 숨겨진 교훈이 있다.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의 집값 때문에 입사를 포기하려 할 때 엉클밥의 아내가 "그들과 컨설턴트로 일하는 건 어때요?"라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 덕분에 입사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래셔널 로즈팀과 협업을 하면서 경력을 키웠다. 그래, 아내 말이 진리이다.. ㅡ.ㅡ

 

여하튼 세계대전부터 AI 대전에 이르기까지 소프트웨어 개발을 개척해 온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었다. 본인이 개발자 종족이라 생각하지만, 이 격동기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덕분에 당분간은 코드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책을 읽을 계획!

 

*. 책을 읽다가 커닌핸 교수님의 <Software Tools>가 궁금해졌다. 스캔본이 있지 않을까 해서 검색하다가 유닉스의 역사를 잘 정리해둔 블로그, Crystal Labs 를 발견했다. 이 사이트에서 스캔본 PDF도 다운로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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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야마구치 슈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마구치 슈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 와 같은 책을 쓴 경영 컨설턴트이다. 경영 철학이나 경영 이론을 쉽게 풀어내는 작가라 생각한다.

 

 

 

다시 꺼내서 읽은 책은 <뉴타입의 시대>이다. 2019년에 출간된 책이니,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쓰인 책이다. 미래 예측이 어려워지고, 전세계적으로 재택/원격근무가 확산되던 때 미래에 대한 모습을 조망한 책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코로나 뿐만 아니라 AI 역시 뉴타입에 비슷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AI가 가져온 변화를 중심에 두고 올드 타입과 뉴 타입의 특징을 비교하며 내가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읽었다. 여전히 유용한 내용이 많았다.

 

이 책의 내용을 하나의 표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야마구치 슈가 말하는 현재 사회 인식, 뉴 타입의 특징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많이 공감되었다. 다만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주장하면서 기장-부기장에 따른 항공사고의 비율 예시라든지 몇몇 예시는 썩 납득이 가지 않았다. 기장이 조종하는 시간이 훨씬 길테니 기장에 의한 항공사고가 많은게 당연하지 않은가. 시간도 많고 권한도 많으니 말이다. 부기장과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늘린다고 사고가 정말 줄어드는지도 의문이 남는다. 물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맥락 자체에는 공감한다..

 

나는 올드 타입인가 뉴 타입인가. 이에 대해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 보다,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나 뿐만 아니라 자녀를 교육하는 관점에서도 생각해 볼 지점이 많이 들어있다. 최근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자주 언급되었던 <생각에 대한 생각> 책 내용이 이 책에도 소개되어서 원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저자의 현실 인식: 패러다임의 전환

  • 물건 과잉, 정답 범용화의 시대
    • 가치 창출의 원천이 '문제 해결 → 문제 발견', '물건 생산 → 의미 창출'로 이동
    •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사회구조와 기술의 요청에 따라 달라진다
  • VUCA 시대의 도래
    •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
    • 과거 경험의 가치 하락 → 새로운 환경을 유연하게 학습하는 인재가 필요
    • 예측의 무가치화 → 우선 시도하고, 결과를 보며 미세 조정하는 방식이 효과적
    • 최적화보다 탄력적 대처가 중요

2. 문제 정의와 혁신에 대한 관점 

  • 문제란 무엇인가
    • '이상적 상태'와 '현재 상태'의 불일치
    • 문제를 정의하지 못한다 = 이상을 그리는 구상력 부족 = 비전 부재
  • 혁신은 수단일 뿐
    • 사업의 목적: 부의 창출 또는 사회적 과제 해결
    • 혁신 여부는 결과로 형성되는 인식이지, 추구할 목표가 아님
    • 뉴타입은 수단이 아닌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에 초점을 맞춘다

3.의미와 동기 부여 

  • 의미가 일하는방식을 바꾼다
    • 타인에게 동기를 불어넣으려면 의미 부여가 핵심
    • 의미와 목표를 지속적으로 제시해야 함
  • 인간은 가변적 자원
    • 공감하는 의미의 풍부함과 깊이에 따라 방출되는 에너지가 달라진다

4.미디어·유통의 변화와 시장 전략 

  • What이 How를 규정해야 한다
    • 과거: (기술적 비용적 한계로 인해) 매스미디어와 오프라인 유통이 상품·서비스의 양상을 규정
    • 현재:인간이 주체적으로 What을 결정하고, How에 마케팅을 활용할 수 있는 시대
  • 글로벌×니치전략
    • 한계 비용 제로 → 전세계에 제품을 알릴 수 있음
    • 단, 마음을 움직이는 예리하고 매력적인 제안이 없으면 확산되지 않음
  • '도움이 되는' 시장vs'의미가 있는'시장
    • '도움이 된다'=승자 독식의 레드오션
    • 의미와 스토리 창출에 더 높은 가치가 형성됨(전우성 작가의'가치소비'개념과 유사)
    • 제품·브랜드 고유의 의미는 모방 불가

5.논리와 직감의 균형

  • 명확한 목적 체계
    • What(목적), Why(이유), How(전략·방법)를 구체적으로 정립
  • 시스템1(직감)과 시스템2(논리)
    • 대니얼 카너먼 & 아모스트 버스키의 프레임
    • 시스템 1과 2를 적절한 대상에 적당히 활용하는 것이 핵심
    • 양적 지표 + 질적 지표를 함께 고려해 판단 (직감도 활용)
  • 오류의 가치
    • 자연계에는 다양한 오류가 내포됨 → 단기적 비효율이지만 중장기적 진화의 계기
    • 구글의 80/20 제도: 의도적으로 시스템에 오류를 내포시키는 장치

6.기술과 인간의 관계 

  • 인간이 주(主),기술이 종(從)
    • 진화하는 기술을 활용해 풍요로운 인간적 세계를 건설하려면 새로운 관점 필요
    • 인간은 양적 단일 지표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음→경계 필요

7.조직과 커리어의 변화 

  • 기업 수명은 짧아지고,인간 수명은 길어진다
    • 조직 형태의 양극화: 대규모 집단 조직+프리랜서
    • 바벨 전략:안정과 위험을 복합 관리
  • 전문가의 영향력 쇠퇴
    • 미리 학습한 경험의 가치가 하락. (빠른 환경변화 때문)
    • 영역을 넘나들며 지식과 경험으로 독창적 지적 성과를 창출해야 함
  • 다양한 시도와 포기의 균형
    • 이길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위해 자꾸 시도해야 함
    • 즉흥적 시도 ≠ 무계획 → 실행하면서 계속 다음 계획을 수립
    • 자원의 한계가 있으므로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함
    • 일은 해보기 전에는 재미있는지,잘 하는지 알 수 없다 → 위험 감지 능력+탈출 결단력 필요

8.교양과구상력 

  • 구상력을 높이려면 기초 교양이 필요하다
    • 승진할수록'문제해결'에서'문제정의'하는 자리로 이동
    • 기초교양: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을 상대화하여 문제를 부각시킴
    • 그냥 넘어가도 될 상식 vs 의심해야 할 상식을 판단하는 혜안 필요
    • 현대 사회의 분절된 영역을 연결해 전체성을 회복시켜 줌

9.소통과 민주주의 

  • 언어의 한계와 경청의 중요성
    • 언어는 엉성한 의사 소통 도구→중요한 것이 누락될 가능성 상존
    • 타인의 경험과 의견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
  • SNS 개인화의 위험성
    • 서로 이해하는 사람들만으로 구성된 폐쇄공간 형성 가능
    • 외부 세계와 단절→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태롭게함

10.시스템과 인간의 이상적 관계 

  • '시스템만 개선하면 해결된다'는 사고는 올드타입
    • 시스템과 인간의 이상적 관계 구축이 중요
  • 필요한 이중성
    • 무대에서 시나리오에 따라 적절히 행동하여 발언권과 영향력을 높이면서도
    • 시나리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잃지않는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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