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서 말은 약 54리터. 예물용으로 사용되는 8mm 진주로 계산해 보면 약 16,000개, 연결하면 128미터, 무게는 20kg에 달한다. 예전에는 이 16,000개의 구슬을 하나하나 꿰어 목걸이로 만드는 기술이 가치의 원천이었다. 아무나 이런 구슬을 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천궁행, 즉 "아무리 좋은 것도 실행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그런데 AI 시대에 이 속담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이제 "꿰는 기술"은 누구나 가질 수 있게 되었다. AI는 16,000개의 구슬을 몇 초 만에 꿴다. 텍스트를 요약하고, 코드를 생성하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은 더 이상 장인의 영역이 아니다. 기술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기술의 접근성은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누구나 "꿸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가치는 어디로 이동했을까? 문득 구슬 그 자체로 옮겨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이 대중화되면 기술 기반의 차별화는 한계에 부딪힌다. 남는 것은 기술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 바로 독점적 데이터와 콘텐츠가 해자가 된다. 예전에는 보석 가공 기술 행위 자체가 남이 넘볼 수 없는 해자였다면, 이제는 우리 집에만 있는 진귀한 원석이 해자가 된다.

 

 

어제 구글이 Gmail에 Gemini를 통합했다. LLM 기반으로 이메일 업무를 자동화하던 스타트업들은 하루아침에 상당한 경쟁력을 상실했다. 플랫폼, 기반기술이란 그런 것이다. 개별 전투에서는 질 수 있어도, 전쟁에서는 이긴다. 유통 채널과 사용자 기반을 이미 확보한 플랫폼은 기능 하나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스타트업 수년간의 노력을 무력화시킨다.

 

이런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플랫폼이 복제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해당 서비스에서만 쌓이는 사용자 행동 데이터, 해당 도메인에 특화된 학습 코퍼스, 규제나 인허가로 보호받는 영역, 수년간 축적된 암묵지와 프로세스 노하우...
 
과연 나의 곡간에는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구슬이 있는가? 그것은 무엇일까? AI가 많은 것을 꿸 수 있는 시대, 진짜 질문은 "무엇을 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다.

 

그렇다면 예전 속담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구슬이라도 서 말이 있어야 꿰어서 보배로 만들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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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좋게도 조만간 길벗에서 나올 <제로클릭>의 샘플북을 받아서 미리 읽어볼 기회를 가졌다. 제로클릭이란 검색 결과 페이지에서 세부적인 검색 결과 항목은 클릭하지 않고, AI에 의해 요약된 내용만으로 검색 행동을 종료하는 것을 말한다.  어느 순간부터 AI 요약만 보고, 페이지 아래에 표시되는 이른바 블루 링크를 클릭하지 않는 내 모습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른 분들도 비슷한 형태로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생겼다. 검색 최적화를 공부할 때 '검색되지 않으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조금은 과격한 문장을 본 적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AI에 의해 요약된 검색 결과에  우리가 만든 서비스나 제품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때문이다.

 

2/ 흔히 AI라 불리는 LLM은 두가지 행동을 잘한다. 문장을 지어내거나, 기존 문장을 읽고 요약/정리하는 것. 그렇게 보면 검색에서 AI 요약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기도 하다. 그러니 구글도 AI 요약을 제공하고, 챗GPT의 개발사인 OpenAI도 다음 공략대상 중 하나는 커머스라고 정하면서 쇼핑 기능을 시연하는 상황이다. 그러면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각 AI 서비스에게(또는 그 대리인인 에이전트에게) 우리 서비스나 제품이 좀 더 신뢰성있고 괜찮다는 것을 어떻게 인식시킬 것인지에 대한 방법일 것이다. SEO에 대응하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이 책에서는 GEO(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을 이야기한다. 즉 AI 답변, 요약에 내 콘텐츠가 인용되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책이다. 샘플북의 한계이겠지만, 문제제기와 배경설명이 끝나고 본격적인 설명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끝나버렸다. 책의 전체 내용이 궁금해진다

 

3/ 이 책에서는 AI요약의 동작방식을 살펴보면서, 그 메커니즘 속에서 어떤 정보가 더 높은 신뢰점수를 얻는지를 설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SIFT 프레임워크를 제시한다. SIFT는 구조(Structure), 의도 적합성(Intent Fit), 정보 충실성(Fidelity), 출처신뢰도(Trust)로 구성된 약어이다.  구글로 대표되는 검색엔진에서 자신의 웹사이트가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EEAT(경험, 전문성, 권위, 신뢰) 프레임워크를 고민한 것과는 다르다. EEAT가 콘텐츠 제작자의 신뢰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SIFT는 AI가 콘텐츠를 처리하고 인용하는 방식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점 자체가 다르다.

 

4/ GEO 전략뿐 아니라, 그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책을 통해 알게되었다. 바로 지표이다. 기존과 같이 실 사용자에 의한 직접적인 트래픽이 줄어들 것이므로, 마케팅 ROI나  각종 의사결정을 위한 지표들의 의미가 변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규 사용자 획득에 드는 비용도, 그에 따른 마케팅/브랜딩 전략도 보완되어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5/ 기술적인 설명 부분에서 다소 단순화된 부분이 있었는데, 기술 서적은 아닌지라 의도적으로 추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분이 블로그나 다른 매체에 비슷한 주제로 기고한 글들을 찾아 함께 읽어보았다. 정식 책에는 SIFT 및 다른 전략에 대해 상세한 설명이 있지 않을까 기대되는 책이다. 책이 정식으로 출간되면 다시 한번 AI가 우리 콘텐츠를 어떻게 읽을지 고민해 보면서 나머지 부분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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