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한 말이라 느껴지지만,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말을 업계 선배들에게 자주 듣는다. 현장.. IT/소프트웨어 개발에서 현장이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실제로 사용자를 만나게 되는 그 지점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개발 단계에서는 나와 소프트웨어만 존재했지만, 현장이라는 지점에 도달하면 내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만나게 된다. 그 사람이 내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사용시나리오가 실제 사용자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 지점이 현장이다.

 

이 책은 오라클 컨설턴트로 오래 활동한 저자의 경험(에피소드)를 통해 원래 의도대로 동작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통찰을 얻었는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마치 IT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같아서 소설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편안하지만 읽다보면 머리를 띵 하고 치는 그런 편안함이랄까. 그 편안함 속에서 우리가 현장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의 역자분이 남긴 '옮긴이의 글'에서 가슴에 와닿는 문장이 있었는데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한다는 것은 결국 어디를 관찰할 것인지, 어떤 것을 무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기본이지만, 늘 기본 지키기가 쉽지만은 않다.

 

책을 읽으면서 일머리,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과정에서의 일머리를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원서의 제목 <How to make things faster>보다 과한 느낌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일을 잘하기 위해 엔지니어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고민한 내용이 잘 전달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책 내용에 대해 내 생각을 메모로 남겼는데, 그걸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관찰이란 고객의 입장(관점)에서 서술되는 증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현장의 타격감(효용감, 효력감)을 고려하여 우선순위를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 지표가 아닌 실제 증상을, 실제 벌어지는 상황을 관찰하라는 저자의 말에 관찰가능성(observability)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지표만 수집하는 것이 관찰가능성의 가치가 아니다.

 

항상 목적을 염두에 두고 증세를 분석하여 해결하는 노력은 어쩌면 개발자보다는 PO/PM에게 더 필요한 덕목일지 모르겠다. 우선순위 결정이 늦어질 수록 증상을 해결하는 시점 또한 늦어진다. 결국 빠른 의사결정이 빠른 해결로 이어진다.

 

102쪽에 소개된 이슈 보고의 정석도 좋았다. 1.재현 과정, 2. 기대동작 3.실제 동작. 이 세가지만 명확해 져도 문제 해결의 절반은 끝난 셈이다.

 

추적(trace)에 대해 저자가 제시한 원칙도 명쾌하다. "추적은 필요한 만큼 하되, 최대한 적게 해야 한다. 오동작하는 특정 기능만 추적할 수 없다면 그리 하라. 만일 그럴 수 없다면 하나의 프로그램 또는 하나의 애플리케이션, 또는 한명의 사용자만 추적하면 된다." 문제가 있을 때 특정 사용자에 관한 특정 시간내의 로그를 볼 수 있다는 넷플릭스의 원격 디버깅 기능이 생각났다. (관련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찾을 수가 없다.)

 

33번 에피소드 "시퀀스 다이어그램의 왼쪽을 바라보자"는  김형국 대표님의 기획 강의 내용을 떠올리게 했다. 기획의 개입 시점이 앞으로 갈수록 그 기획의 임팩트는 커진다는 것인데, 시퀀스 다이어그램의 왼쪽은 더 이른 시점을 의미하고, 빠른 개입은 전체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기획이나 개발 모두에 적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구절이 많았다. 빠른 것이 마냥 효율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에서 평상시 놓치고 있었던 '낭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진정한 효율은 단순히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이클에서 낭비를 줄이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자신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맞닥뜨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답할 수 있는 또다른 대체 질문으로 만족하는 경향을 보인다.... 보통 그렇게 대안으로 마련된 대체 질문들은 원래 질문보다 약화된 버전일 경우가 많다."는 구절. 저자는 결국 plain & straight question, 즉 직접적이고 명확한 질문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불편하더라도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 문제해결의 시작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멀티 태스킹, 즉 한번에 여러 업무를 수행하는데 대해서도 저자의 지적이 있었다. "컴퓨터는 겨우 몇 마이크로초 만에 컨텍스트를 전환할 수 있지만, 사람은 컨텍스트 전환에 약 25분이나 필요하다. 단순히 시간 낭비 이상의 고비용이 든다"는 주장인데, AI 도구가 많이 도입되면서 여러가지 업무를 전환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다시한번 곱씹어 봐야할 지적으로 느껴졌다.

 

예측하기 파트에서는 TDD가 떠올랐는데, TDD는 단순히 함수 개발에 국한되는 개념이어서는 안되고 미리 결과를 예측하고 개발 할 수 있는 마중물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최적화에는 두가지 스킬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첫번째는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 두번째는 그 질문의 답을 구하는 것. 그만큼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장에서 수많은 문제를 마주하며 경험을 쌓아온 저자의 생각이 녹아있는 책이다. 주니어보다는 약간의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더 재미있게 다가가는 책일 듯 하다. 이 이야기는 그때 나의 그 이야기와 비슷하네 하는 생각에 이 바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괴발개발한 글씨. 지하철로 회사 출퇴근하면서 읽었더니.
성공하자!!

 

 

일 잘하는 엔지니어의 생각 기법 | 캐리 밀샙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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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개인 블로그가 IT 관련 서적을 읽고 정리하는 블로그가 되어가고 있지만,

나란 인간은 여전히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은 중년이다. (친한 동생은 나에게 지적 오지랖이 넘친다고 했다.)

연말이고 해서 그동안 어떤 책들을 많이 읽었는가를 되돌아보다가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기 위해 읽은 책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에 집어든 책이 경희대 사학과 강인욱 교수의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이다.

 

업어온지는 꽤 시간이 된 책인데, 문득 K-*가 주목받는 현재 우리의 기원은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이며, K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다시 읽을 생각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풍부한 고고학적 지식과 설명은 꽤나 흥미로운 관점을 많이 제공해 주고, 새로운 시선을 전달해 준다. 사실 나에게 고고학이라고 하면 인디애나 존스밖에 모르는 수준인데.. 이 책에서는 과학(신기술)과 언어, 자연환경의 변화, 주변 권력의 변화에 따른 한반도 거주민의 영향을 재미있게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대목은 134쪽이었다.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 얼바인 근처에서 8년간 거주했었는데, 얼바인은 전세계 문화가 다 섞이는 melting pot같다는 이야기를 지인들과 나누곤 했었다. 그런데 강인욱 교수는 오히려  "한반도가 마치 용광로같다고 자주 생각한다.한반도라는 지리적 환경은 변하지 않는데, 이 작은 땅에서 대륙과 바다를 톨로로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오간다. 그 속에서 지금의 문화를 구축했다. 한반도는 대륙 끝의 동떨어진 땅처럼 보이지만 고립되지 않고 끊임없이 교류하고 이주하며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말한다.

 

변화에 예민하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한반도.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과 현재의 결과를 만들어낸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해 보았다.

 

이어 "고립성을 뚫고 주변 지역의 정보를 얻기 위해 인적 교류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모험이었고, 인류는 그 모험심 덕분에 발전해 왔다. 우리의 살아있는 역사는 우리가 끊임없이 주변 지역과 부딪히며 살아냈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말에서는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우리가 이만큼 성장해온 배경에는 용기 넘치는 K-정체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또한 재미있게도 금관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는데, 일부러 머리를 납작하게 만들어서(편두) 금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자신들 뿐이라면서 선민의식을 강조했다는 말에, 최근 신라 금관을 선물받고 좋아하던 미국 대통령의 모습도 오버랩되었다.

 

늘 왜 광활한 대지를 호령하던 고구려가 아니라 한반도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을까라는 이야기를 술자리의 주제로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결국 신라가 그럴만한 문화적 토양을 갖추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랜만에 과거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인문학도 과학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수용하는구나라는 (선입견을 격파해준)   깨달음을 제공해 준 책이 되었다.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에 현기증이 나는 요즘, 오히려 반대로 수천년을 관통해온 우리의 기원을 생각해 보고 싶은 분들께는 꽤 재미있는 시간을 제공해 줄 책이다. 다음은 이 책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구절들이다.

 

  • 세상을 바꾸는 신기술 하나가 한 나라를 먹여 살리기도 하고, 다른 나라와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청동기라는 기술은 거대한 하나의 문명을 이룰 만큼 혁명적인 발견이었다.
  • 고고학자들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국가의 조건은 바로 계급이었다.
  • 공동체의 구심점이 사라진 유목문화에서 모임 장소로써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 고분이었다.
  • 국가가 성장하면 자동으로 고가품이 수입되거나 고급 기술이 유입되었다. 뛰어난 기술로 정교한 장신구나 도구를 만들었던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 내물왕이 나라를 통치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외국인이 대거 유입된 시점은 신라가 거대한 국가로 폭발적인 성장을 한 시기와도 맞물렸다.
  • 흉노는 그 당시에 선진 문화, 선진국의 대명사였던 셈이다.
  • 금관에는 독점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신의 선택을 받은 금관을 쓴 사람, 그들은 권력과 정당성을 거머쥐었다.
  • 신라인들은 자신의 기원을 스스로 만들어나갔다. 혈연관계만으로 누구의 후예라고 판단하지 않고, 스스로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민족의 문화를 넓게 포용하면서 나라의 정체성을 새롭게 세웠다.
  • 언어는 서로 교류하며 혼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전 및 쇠퇴, 분화를 거듭한다. 언어의 본질은 인간들 사이의 교류를 반증해 주는 자료이다.
  • 독립을 갈구하며 언어의 기원을 찾는 핀란드인들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때 일본어를 강요받으며 한국어의 기원을 찾던 우리의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 언어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것은 없다.
  • 기원이라는 것은 핏줄이 아니다. 적응이다.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이 결국 후손을 더 많이 퍼뜨릴 수 있다. 그럼 그들이 기원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원은 순수하고 우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더 환경에 잘 적응했냐를 가늠하는 기준일 뿐이다.

시카치 알리안 인면상 모음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 강인욱 - 교보문고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국내 대표 고고학자 강인욱 교수가 전하는 단일하고도 다채로운 ‘한민족의 기원’ 이야기살아가는 데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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