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에는 어머니 모시고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목적지를 고창 선운사로 정했다. 아직 피지않은 동백꽃망울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떠난 길. 고창을 둘러보다가 도로 표지판에서 기억속의 이름, 손화중 대접주의 이름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아침 잠을 자는 사이에 나는 따로 손화중 접주의 흔적을 쫓았다.
처음 들린 곳은 숙소와 가까웠던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였다. 기포지는 넓은 공터였다. 휑하니 깃발만 나부끼며 그 날의 함성을 기리고 있었다. 기포지 설명문에는 여전히 동학은 서학에 반대하여 창시된 민족 종교라고 되어 있다. 수운 최제우는 서학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서세동점의 시대에서 서학으로 일컬어진 기독교 문명의 폭력성과 비인간성을 지적했고, 자신의 깨달음을 동쪽에서 먼저 펼친다라고 했을 뿐이다. 이는 역사학이 동학을 제단하면서 생긴 오해라 본다. 언젠가는 정리되었으면 좋겠다.



기포지에는 소나무 세그루가 서 있는데, 동학혁명을 이끌었던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세분의 자손들이 심은것이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의 거점이었던 고창현, 무장현, 홍덕현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들린 곳은 고창 동학농민혁명 홍보관이다. 그런데 아뿔사 고창읍 중앙로 252로 이사갔다고 한다. 빈 건물과 탑마나 보고 왔다.


방향을 돌려 손화중 접주의 도소로 향했다. 그 길에서도 쉽게 동학혁명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드디어 찾은 손화중 도소터. 도소란 동학도인들이 모여 종교의식을 진행하던 곳으로, 천주교의 수도원이나 성당에 해당한다.


그리고 손화중 접주가 머물렀던 집터도 주변에 남아있어서 들러 보았다.

고창에는 손화중 선생의 흔적이 많다. 길 이름이 손화중로다.

손화중 선생의 피체지도 들러볼 생각이었으나, 숙소와의 거리가 멀어져서 다른 유적지로 향했다. 고창에는 전봉준 생가터가 남이있다. 전봉준 장군 생가터에는 '새야새야 파랑새야'노래가 쇠귀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천안전씨 대종회에서 세웠다.

정읍쪽으로 넘어가면 전봉준과 관련된 곳이 많이 있을 텐데.. 아쉽지만 이번 길은 가족여행이 목적이었던 지라 여기에서 멈췄다. 고창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의 배꼽이 뒤늦게 생각났다. 아이들이 힘들어해서 도솔암까지 가지 않았는데, 그곳까지 들렀으면 손화중 접주의 자취를 제대로 보았을 것 같다. 고창에서 손화중 선생을 테마로 역사 둘레길 같은 것을 만들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올해 손화중과 김개남, 두 분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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