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년도에 개인적으로 학생운동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지속적인 사회운동, 특히 부문운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96년 초에 학내 대자보를 붙이고, 부산정보연대 PIN이라는 정보운동 사회단체를 만들었었죠. 사실 PIN이 첫 출발은 아닙니다. 원래 서울대를 중심으로 정보연대 SING이 활동하고 있었고, 인하대에서는 NOTBAD(Not Only Think, But Also Doing) 등이 있었죠.
그러한 활동 가운데 한국교원대학교의 학보사에서 원고를 요청해서 작성했었는데요.

며칠전 퇴근길에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 글을 적은지 어느새 1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해당 패러다임들은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한번 다시 옮겨 봅니다.






정보 운동 , 새로운 대안적 사회를 만든다.

가상공간과 현실세계와의 교류 지속되어야
100만의 사용자층을 확보하였다는 'PC통신'도 불과 5∼6년 전에는 낯설기만 하던 단어였 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는 '인터넷'을 모르면 현대인이 아닌 듯한 착각을 받으며 살아가야만 하 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산업화, 근대화 이후 반성의 여지없이 급속도로 정보화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정보화 사회의 모습은 엘빈 토플러로 대표되는 전자 전도사들(Electronic evangelists)에 의해 '손가락 하나로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유토피아로 그려지기도 하고, 라이언 등에 의해 '어떤 이가 손가락 하나로 내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감시받고 통제 당하는 세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과학기술, 특히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인류에게 또다른 가능성의 공간과 기대를 주었지만 한편 또다른 문제점을 낳기도 하였다. 대중의 참여확대의 가능성으로 전자민주주의의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또 한편으로 전자감시사회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바로 인류의 행복한 미래를 약속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화에 따른 사회의 변화를 주시하고, 과학기술이 올바른 방향으로 통제되도록하여 새로운 대안적 사회체계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실천적 움직임을 필자는 '정보 운동'이라 정의하고자 한다. 보통 정보운동하면 통신이란 가상공간 에 한정되어 정보공유운동정도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우리가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가상공간은 또하나의 의사소통체계이며 또하나의 사회이며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 가상공간(Imaginary space)이 아닌 가상공간(Cyberspace)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변화를 유발한 정보화의 시초에 관해 다양한 의견이 있으나 자본주의의 발전과 정속에서 살펴보자.

19세기말 산업혁명은 기계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절대 노동시간에 최대의 효율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인 테일러리즘은 노동의 강도를 한층 강화시켰다. 그러나 초기 자본주의는 두차례 위기를 맞게 된다. 상품들은 대량생산되어 있으나 저임금정책으로 구매력을 사실한 노동자들로 인해 구매자가 없는 시스템이 되고만 것이다.
두차례의 공황을 계기로 자본주의에 화폐를 통한 국가의 개입을 주장하는 케인즈주의가 도입된다. 이후 대량 생산, 대량소비의 안정기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안정은 제3세계의 노동억압정책에 기반한 저임금 노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통해 선진국의 노동집약적 산업과 공해산업이 제3세계로 수출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면서 진행된 제3세계국가의 민주화와 민간운동의 성장은 케인즈주의적 조절능력을 상실시킨다. 그로 인해 선진국은 재정적자와 10%가 넘는 실업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이러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선진국은 비교유위에 있던 첨단기술과 서비스부분을 적극 성장시켜 새로운 고용효과를 창출하고, 취약한 제3세계를 공략하여 자국의 이익으로 삼고자 하였다. 결국 선진국의 이러한 시도를 제대로 실현시키지 못하는 GATT체제를 버리고 서비스영역에까지 완전개방과 자유무역을 강제하는 WTO체제가 출범하게 됨으로 일단락 지어진다. 물론 제3세계진영에서 반대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즉 자본간의 경쟁이 국제적 양상을 띄는 가운데 생산과 소비, 그리고 이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돌파구로서 정보화가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정보화는 우리사회에 어떤 변화를 끼쳤는가?

모든 정보가 비트, 즉 디지털의 형태로 존재하게 됨에 따라 정보의 하나의 상품처럼 되고, 정보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리가 저작권의 형태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새롭게 형성된 통신공간에 국가권력과 자본의 의도적인 개입으로 인하여 개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정보운동은 이런 현실변화에서 크게 '정보기본권 확보'와 '반저작권운동(Copyleft)' 두축 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보기본권은 접근권, 프라이버시권, 통신자유권을 일컫는다.
 
접근권은 네트워크에 대한 대중의 자유롭고 용이한 접근이 가능한 권리이다. 접근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정보운동단체들은 보편적 서비스와 공적접근을 주장하고 있다. 만약 네트워크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 서비스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정보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정보에 대한 공적접근 기회가 보장된다하더라도 현재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의해 유리한 지위에 있는 개인 또는 집단이 보다 성능이 좋은 고가의 정보통신기기를 이용하여 보다 많은 정보를 획득 활용함으로 인해 현재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한층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보운동단체들은 지역사회가 스스로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다양한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지역사회자치를 이루려는 지역사회네트워크를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전산망의 하향적 확산이며, 시민사회와 NGO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현재 한국민간단체네트워크가 구성되어 있으며, 전주의 INP와 부산정보연대가 지역사회네트워크를 구성하려 하고 있다.

프라이버시권은 정보화속에서 개인의 사생활이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이것은 자신에 관한 정보의 공개 여부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인식은 미약하다. 99년부터 정부가 시행예정인 전자주민카드제도는 프라이버시권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지문날인은 이제 일본에서도 없어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8세가 되면 당연히 공개해야 하는 하나의 개인정보인 셈이다.

통신자유권은 통신공간에서 자유로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권리이다. 전세계적으로 국가권력에 의해 나타나는 검열과 통제에 대하여 네티즌들은 파란리본을 홈페이지에 달아 항의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는 국가 권력, 통신망사업자, 통신윤리위원회에 의해 임의적으로 삭제되어지며, 또한 임의적용으로 유명한 국가 보안법으로 통신 공간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한정시키고 있다. 나우누리의 한총련 CUG 폐쇄가 그 대표적 예이다.

이런 정보기본권확보운동이외에 반저작권운동을 들 수 있다. 반저작권운동은 CUG와 구텐베르크프로젝트로 대표되어진다. 이것은 프로그램이든 회화, 음악, 책이든지 간에 인류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정보의 수정, 복사, 재배포의 권리를 사용자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즉 저자의 창조적 노동을 장려하여 인류의 공공이익을 증진하고자 하는 저작권의 원래 의미 회복선언이다.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에서 반저작권운동은 태동기이다.

'정보화'라는 실체없는 유령이 우리사회에 떠돈지 3년 남짓 되었다. 짧은 기간만큼 정보운동에 남겨진 과제는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통신이라는 가상공간을 적극적인 실천의 모습으로 현실세계와의 교류를 지속하는 것이다.

한자에 이로움을 뜻하는 '利'는 곡식을 뜻하는 '禾'와 칼을 뜻하는 '刀'로 구성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곡식을 칼로 베어내는 것과 같이 실천을 통해 현실에 적극 개입할 때만이 진정한 정보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호/부산대/부산정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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