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님의 트윗으로 부터 인사이트 출판사의 전자책 서비스 종료 소식을 접했다.  먼저 13년 동안 묵묵히 운영해 온 인사이트에게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인사이트 전자책 서비스는 단순한 전자책 판매 서비스가 아니라 국내 IT 출판 업계의 가장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출판사 블로그를 되돌아 보니 2012년 4월 18일 PDF로 전자책 서비스를 시작했다.  Mobi도 아니고 ePub도 아닌 PDF파일을, 그것도 수작업 결제 처리로 전자책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험이었을 것이다.(만약 내가 사업 담당자라면 이 서비스를 기획한 사람을 싫어했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서비스 철학이었다. 암호도 없고, DRM도 없이 그냥 자유롭게 자신이 좋아하는 뷰어로 볼 수 있도록 PDF 파일을 보내주는 방식. 기술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사업적으로는 위험한 선택이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점이 인사이트 전자책 서비스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인사이트가 PDF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전자책이 책 세상을 뒤덮을 것 같은 시대에도 꿋꿋이 종이책만 내던 인사이트에서, 드디어 작은 발걸음을 내딛어 봅니다. 바로 PDF 서비스입니다. 아직 시작 단계라서 PDF 뿐이고, 결제도 수동식

blog.insightbook.co.kr

 

13년간 이 서비스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기술력이라기 보다는 철학 때문이리라. 한기성 사장님께 불법적인 PDF 유통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여쭤본 적이 있었다.  "허허.. 그 분들은 우리 책의 독자가 원래 안될 분이지 않을까요? 오히려 우리 독자분들에게 불편함을 드릴 수는 없지 않나요?"라는 사장님의 말씀에 이 서비스의 본질이 들어있다. 독자와의 신뢰 관계. 고객 중심에서 생각하는 서비스... 단순히 책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사고 파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개발자 생활을 했었는데, 인사이트의 DRM-Free PDF는 정말 소중한 존재였다. 언어의 장벽없이 고급 콘텐츠를 누리고 싶은데, 교보나 예스 24같은 전자책 플랫폼은 당시 해외에서 사용하기에 여러 제약이 있었다. 본인 인증부터 시작해서 느린 인터넷 환경때문에 DRM인증 자체가 실패하거나 국가 제한에 걸려 보지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사이트의 PDF는 단순히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기쁨을 제공했다. 아이패드든 킨들이든 노트북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인사이트의 종이책을 너무 사랑해서 한국에 들릴 때마다 잔뜩 사들고 갔다. 한국과 미국을 거쳐 다시 돌아온 나의 책들...)

 

아쉽게도 인사이트의 Free DRM 실험은 IT 출판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했다. 다른 출판사들이 이렇게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위험 부담이 너무 크고, 수익성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오라일리의 SafariBooks처럼 출판사들이 협력하는 플랫폼이 국내에서도 더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기술적으로는 지금도 충분히 구현가능하지만, 업계의 의지와 독자의 인식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비 오는 저녁, 한 시대의 마감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다. 우리나라가 K-IT Contents 강국이 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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