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지만, 학생운동의 정점에서 NL과 PD의 한계를 넘고자 진보학생연합, 진보정치대학생연합, 생활진보대중정치 대학생연합 이 3조직이 통합하여 출범한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의 출범 선언문이다. 한때 서울대, 이화여대, 부산대, 효성여대, 금오공대 학생운동의 중심점이었지만 학생운동이 아닌 사회운동의 헌신을 명목으로 해산하였다.
 
 
'21세기 진보학생연합 출범 선언문
오늘 우리는 학생운동의 새로운 길을 열어 민중승리 통일세상을 예비할 21세기 진보학생연합, 그 역사적 출범의 닻을 올린다.
세계는 탈냉전의 격랑 속에 처해있다. 세계 제2차대전 이후 동서진영으로 나뉘어 이념적, 군사적 대결을 가속화시켰던 냉전체제는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일단락되었다. 일견 세계사는 자본주의 승리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듯보이지만 그것은 착취체제의 영원한 승리로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대중들의 실질적 참여와 실천이 동반하지 않는 체제, 인간을 자기 목적으로 두지 않는 체제는 어떤 명분으로든 사회주의와 관계가 없다는 교훈을 얻는다.
87년 6월 항쟁이후 한국사회는 점진적 민주주의 확대의 시기를 경과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배경에는 유례없는 속도로 성장해온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이 놓여있다. 이로써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은 이제 더 이상 되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방향이 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진보진영에게 두가지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 파시즘적 통치에 맞서왔던 진보진영의 체질과 운동방식은 변화된 시대에 현대화될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진보진영이 더욱 활발하게 대중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이로써 한국 진보운동은 한단계 더 높은 운동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주어졌다.
그러나 탈냉전시대에 유일한 냉전지대라는 오명을 얻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은 우리에게 무거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세계사적 탈냉전과 함께 도래하고 있는 한반도의 탈냉전은 냉전시대의 그것만큼 격렬한 소용돌이를 예고하는 것이다. 평화통일과 사회진보를 갈망하는 민중의 세기적 염원은 또 다시 질식되고 민족사의 또 다른 굴절과 시련이 강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흡수통일의 불순한 음모를 숨기지 않는 보수지배세력의 극우맹동주의가 해묵은 냉전적 이념의 잣대로 공안탄압의 칼을 휘두르는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제 분명 세계사는 새로운 단계, 민족사의 새로운 단계는 새로운 진보운동을 요구하고 있다. 분단 한반도에서 진보운동은 흡수통일의 음모, 개혁실종의 전반적 반동화에 맞서는 사회대개혁과 공존적 평화통일을 향한 대연대라는 민중적 민족적 흐름으로 가시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NL과 PD라는 낡은 이념적 모델과 기존의 양식으로 형성될 수 없다. 확대된 대중의 역할에 기초하여 보다 풍부한 참여의 형식과 보다 분화된 진보적 대안들을 구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보다도 냉전적 국가사회주의적 관념이나 친북노선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대중주체 참여정치, 민주주의의 전면화와 풍부화는 새로운 합리적 진보운동의 기본 정신이다.
한국 전쟁 이후 무참한 사회현실을 꿰뚫고 민주주의의 함성을 드높였던 4.19 학생운동의 역사와 70년대 군사독재-유신반대 투쟁의 봉화를 들어올렸던 학생운동의 역사는 한국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 그 자체였다. 아울러 80년대 테러적 통치를 처절한 저항으로 맞서왔던 학생운동은, 급기야 찬연했던 87년 민주주의 항쟁의 불꽃이 되어 역사에 길이 남을 숭고한 정신을 남겼다. 불의와 억압에 맞선 우리 선배들의 저항정신은 우리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선배 운동가들의 순결한 정신을 21세기를 앞둔 오늘의 현실에서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대중적 실천으로 그 열매를 맺고자 한다.
오늘 학생운동은 새로운 기로에 서 있다. 우리는 지금 기존 학생운동의 오독된 이념적 독선이 초래한 사회와 학원으로부터의 대화의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이제 사회와 학원의 성숭한 대중들은, 선언하고 지도하는 학생운동이 아니라 대화하고 교감하는 학생운동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학생운동은 보다 학우대중과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 대화의 단절을 극복하고 학원사회의 진보적 활력을 복원해내야 한다.
학생운동은 또한 21세기 통일시대를 내다보는 우리사회가 제기하는 폭넓은 운동과제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발견해야 한다. 임박한 통일에 대히바혀 남과 북에서 냉전유물과 분단잔재를 척결해나가는 것은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지방화시대를 맞아 지역사회 내의 교류와 연대의 길을 찾는 것도 시급하다.
이에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은 새롭게 격동치는 민족사 앞에, 진보운동의 앞날을 개척하는 노동자-근로대중 앞에, 21세기를 준비하는 패기에 찬 젊은 청년 학도앞에, 우리의 더운 가슴 뜨거운 피로 이렇게 선언한다.
- 우리는 NL/PD의 낡은 대립구도를 청산하고 대중주체 참여정치, 개방적 연대의 기품으로 합리적 진보운동을 전대한다.
- 우리는 진보적 사회대개혁운동에 적극 동참하며 노동자, 근로대중, 진보세력이 정치 세력으로 나설 수 있도록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 운동에 앞장서 나간다.
- 우리는 탈냉전 시대를 주도하는 진보적 평화통일 운동을 적극 전개한다.
- 우리는 대학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학우중심의 운동을 지향하며 대학개혁, 교육개혁에 앞장선다
- 우리는 시민의 생활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회 환경과 악습을 타개하는 운동에 앞장선다.
우리에게 열린 마음의 싱싱함이 없다면, 실사구시의 치열함이 없다면, 민중과 함께 하려는 열정이 무디어 진다면, 행여 잠시라도 대중과 호흡하려던 애초의 진지함을 망각한 채 우리자신의 현란한 구호에 도취된다면 우리의 선언은 공허한 메아리, 환멸스런 말잔치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시작의 치열함과 가슴떨림에 충실할 때만 비로소 역사는 우리에게 승리의 길을 열어보일 것이다.
동지여! 고단한 우리네 민족사는 새로운 여명을 맞고있다. 민중해방, 평화통일의 피안을 향해 격동치는 역사의 바다로 담대히 나아가자
진보운동 만세! 21세기 진보적 통일조국 만세!
남한 학생운동의 새기수 21세기 진보학생연합 만세!
1994년 9월 10일
21세기 진보학생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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